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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닥터컬럼

제목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2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016
내용


일요일 오전 한가로운 일상이 시작되어 어슬렁거리며 볼거리를 찾던 나에게 책한권이 눈에 들어온다.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아~ 민속학자인 김열규님이 쓴 죽음에 대한 보기드문 제목과 주제의식으로 가득찬 좋은 책이었다고 기억된다. 우리나라에서 죽음을 제목이나 주제로 나온 책은 아주 귀한데 그 이유는 책에서 말하지만 한국인들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거나 말을 하기를 꺼린다는 것, 죽음을 회피해왔다는 것이다.

 

어릴적 친구들과 놀다가 영구차가 지나가면 우리 꼬맹이들은 화들짝 놀라며 한쪽 발을 들고 한두바퀴 도는 일종의 의식행위를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문상을 다녀오면 집에 들어서기 전에 소금을 뿌리고 종이를 태운 것을 넘어서 집에 들어가도록 아내가 조치한다. 집에 나쁜 귀신이 따라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액막이행위는 오래된 전통이 되었다.

 

이처럼 죽음은 공포와 두려워 피해야 할 어떤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래서 묘지는 영원한 안식처의 의미보다 귀신과 원혼이 떠도는 호러의 이미지가 되어왔고 삶 속에서 가능한 저 멀리 뗴어내고 싶은 보고싶지 않는 터부가 된 것이다. 과거 공동묘지 옆에 고급아파트단지가 들어선 후 주민들이 이 공동묘지를 철거해 달라고 농성을 했던 적이 있다. 사자의 안식처가 먼저 자리잡은 곳에 산자들이 멋대로 와서는 문간방에 세든 사람이 안방의 주인에게 나가라고 하는 격이었다. 이처럼 우리들은 죽음을 차갑게 너무나 이질적으로 대하고 잊어버리고 능멸한다고 저자인 김열규는 토로한다.

 

그리고 죽음을 잊으면 삶이 덩달아서 잊혀진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이것은 삶이 그 자신의 숨결을 그리고 핏기운을 다그치기 위해서 있는 말이라야 한다, 이 세상에 삶만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죽음만이 있기를 바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삶과 마주한 죽음에게 전한다, 죽음아 이제 네가 말하라!

 

김열규님의 진중하고 간절한 말처럼 삶이 소중하려면 죽음을 더욱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사실, 죽음은 항상 우리 옆에 같이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눈을 돌릴 뿐이다. 인간의 역사,문화에서 삶과 사랑, 행복은 죽음과 이별, 고통과 더불어 씨줄과 낱줄로 엮인 하나의 옷인것을. 내 아이가 태어나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이 달라지는 기쁨으로 가득차다가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의 비빌 언덕이 통채로 없어지며 세상은 산다는 것이 비탄의 구렁텅이로 다가온다. 며칠 전 같이 식사하며 농을 나누었던 사람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여 이제는 장례식의 초상으로 멀그니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자신 또한 사신의 손아귀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는 순간 뒤로 다가와서 튀통수를 칠 것이다. 이봐~ 몰랐어? 수없이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여주었는데 마치 너에게는 오지 말아야 할 것이 온것처럼 억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동안 생각안하고 뭐했던 거야~자, 이제 이별하고 갈 시간이야.

 

죽음이 우리들 옆에 항상 삶과의 이중주처럼 같이 살고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삶이 더욱 소중해지고 깊어진다는 것은 나도 알고 당신들도 알고있다. 자꾸 잊어버리고 더 즐겁고 재미있는 쪽으로 눈을 둘리기에 직면하지 않는 것이리라.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함부로 다루지 말고 진중하게 경건하게 차분하고 관조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태도는 관조 이상으로 수준 높은 단계인 유머로 승화하자는 말로 맺는다.

책에 들어있는 일화들이다.

 

두 노인의 대화이다

'자네 말일세, 저쪽 죽음의 세계가 어떤 건지 아나?'

'내가 무슨 재주로.'

'그럴테지, 한데 거기는 대단히 좋은 데라는데.'

' 예끼~ 말도 아닌 소리 말게.'

'그게 그렇지 않다네.'

'뭐가 좋다는 게야, 그렇게 아는체 하는 자네는 거길 가봤던가?'

'미련하긴~ 꼭 가봐야 아는가?'

'그래 어떤데?'

가만히 미소짓던 노인은 말한다.

'거기가 아 얼마나 좋으면 글쎄, 하고 많은 사람들  다들 가서는 안돌아오느냐 그말일세, 자네 거기서 돌아온 사람 한사람이라도 있단 소릴 듣기나 했던가?'

듣는 노인은 묵묵부답, 다만 고개만 무수히 주억거리더라고 이 일화는 끝을 맺는다.

 

 죽음에 관한 은은한 꽃향기같은 일화가 아닌가, 죽음을 관조하는 수준에 도달해야 나올수 있는 태도가 아닌가.

 

또 하나의 일화이다.

한 뛰어난 스님이 있었다. 그는 물구참선, 즉 물구나무 선 참선으로 그의 죽음을 맞았다. 열반하고 며칠이 지나도 시신은 거꾸로 곤두서 있기만 했다. 밀어도 넘어뜨려도 까딱도 하지 않고 송곳처럼 꼬장꼬장했다. 소문을 듣고는 누이가 달려왔다. '너 또 그 장난질이구나!' 누이가 살짝 밀쳤다. 그제서야 송장은 바로 누웠다.

 

도를 꺠친 스님이 염화시중의 미소로 죽음을 맞으면서 듣는 우리들까지 미소짓게 만든 그의 마지막 유머. 삶과 죽음에 대한 얼마나 높은 수준의 통찰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지 절로 탄복하게 만든다. 나는 죽음을 앞에 두게 되었을 때 관조와 유머로 내 생을 통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소원하고 노력해야겠다. 한번 뿐인 인생을 열심히 살자고, You only live o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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