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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닥터컬럼

제목

내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23
첨부파일0
추천수
1
조회수
1419
내용


얼마 전 한미수필문학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의사가 환자와 함께 한 치료경험을 수필작품으로 뽑는 상으로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의사들에게 꿈같은 자리이다. 감격스럽게도 내가 응모한 ‘사별, 잊어야하는 것이 아닌’ 이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자리에서 심사위원장인 정호승 작가가 나의 글에 대하여 길게 언급하였다. 그는 이 글이 “한 엄마가 자식과의 사별의 고통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그린 작품”이라며, “그냥 극복하라는 게 아니라 이러한 고통은 함께 나누고 견뎌나가며 고통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절에 처마 끝에 매다는 ‘풍경’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이 풍경을 달아보았는데 너무 안쪽에 달았더니 바람을 받지 못하여 소리가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의사들은 제 위치에 있는 풍경처럼 소통의 바람이 불어 풍경소리가 울리도록 좀 더 환자의 고통에 마음을 내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이 말을 들으며 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전공의 4년차 시절 난 부산의 영도의 한 병원에 과장대리로 파견근무를 나갔었다. 매화가 만개한 것을 신호로 봄꽃들이 순서대로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던 봄날 이었다. 바다내음이 싱그러웠던 영도에서 난 그 봄처럼 기분이 좋고 설레었다. 전문의 시험이 남았지만 난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이 넘쳤고 패기만만하였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찾아오셨다. 진료과장으로서의 아들의 모습이 뿌듯하였고 궁금하였던 것이다. 대기실에서 내가 진료하는 것을 보셨다. 몇 명의 환자를 보고 같이 차를 마시는데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였다. “치호야~ 차분히 잘 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힘든 사연을 털어놓을 때 좀 손이라도 따뜻하게 잡아주며 다정하게 해준다면 어떻겠니?“ 난 아버지의 의도를 이해했지만 정신치료를 모르시기에 하는 말씀이라고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킨쉽 같은 지나친 치료자의 반응은 치료적 관계를 해친다고 설명 드렸다. 아버진 안타까운 듯 한 번 더 당부하시며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고 난 잊어버렸다.

 

몇 년이 지났다. 나의 환자들은 너나없이 마음의 상처들이 깊었고 고통스러워하였다. 내가 배운 것 이외의 다른 치료방법들을 학회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다양한 무기들을 갖추고 자신감이 고취되어 전쟁 같은 이 치료에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환자들의 상처는 베어버리고 태워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재발하였고 그 사람을 지배하였다. 난 지치고 무기력해졌다.

어느 날 너무 힘들어하는 환자분을 보며 안쓰러워 그의 손을 꽉 잡고 가만히 있었다. 울컥하면서 눈물이 글썽했고 얼마나 힘드냐고 하는 내 목소리는 떨렸다. 그이가 나가고 실수를 했음을 알았다. 치료자의 지나친 감정반응으로 환자가 의사에게 의지하면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므로 자책하였다.


그런데 다음에 본 그는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제 혼자 괴로운 고통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힘을 얻었어요. 사실 이전 의사 샘과 상담에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거든요. 항상 차분하게 냉정하게 거리를 지키는 듣는 의사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제 말이 허공에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지요. 어떤 날은 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시더군요. 그 날 선생님 면담 후 가슴에 맺힌 게 풀렸어요. 물론 제 문제는 제가 풀어야겠지만 용기가 났기에 열심히 하렵니다.”


이 분에게는 어떤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았었는데 일어난 변화였다. 그 순간 그이의 눈빛을 보면서 우리의 관계, 라포(rapport)가 단단해졌다고 느꼈다. 그 후 아버지를 뵈었을 때 이제야 나의 큰 실수를, 내가 얼마나 오만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진 고개를 끄덕이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내 앞에 있는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의 예전 모습들이 떠올랐다. 능력을 인정받고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시절, 불의를 못 참고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던 핏발 선 눈을 가졌던 그날들, 가장으로서 어께가 쳐지고 고개가 숙여졌던 시간이었다. 그 때 그는 사는 게 힘들었으리라. 고통스러웠는데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을 뿐인데. 아마 그래서 의사아들에게 그렇게 부탁하셨던 게 아닐까.

 

이제 난 환자들을 상담할 때 확실한 치료방법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 그이와 나의 관계의 질이다. 그 분의 마음에 치료자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가 치료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가 든든하다면 가만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만으로 좋아지기에.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같이 견디고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내 아버지에게, 정 호승 작가에게 삶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


정호승의 詩, ‘풍경을 달다’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
먼 데서 바람 불어와 /  풍경소리 들리면 / 
보고 싶은 내 마음이 /  찾아간 줄 알아라

 

난 가슴을 부여잡고 나에게 오시는 분들에게 처마 끝의 적절한 위치에 달려 은은히 들려주는 풍경이 되고 싶다. 풍경속의 눈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항상 각성하는 치료자의 영혼을 지니고 싶다. 살면서 ‘아~ 정말 삶은 비극 투성이야’ 라고 생각할 때 풍경소리가 들리면 좋겠다. 서로를 위해주고 염려해주는 마음이 바람이 되어 풍경을 살짝 흔들겠지. 이렇게 사랑의 소리로 돌아온다면 우리 마음은 외롭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파란 하늘에 울려 퍼지는 은은한 풍경소리가 보이고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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