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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닥터컬럼

제목

삶의 공포와 리차드 파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2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644
내용


지난 해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자살이 줄어들지 않은 것이었다. 자살의 원인으로 우울증을 가리키는 것은 맞으나 공포와 불안증을 더 우선한 원인심리로 생각해보아야할 것 같다. 이 끔찍하게 무서운 것들로 인한 두려움이 자신을 죽이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기해년의 끝 무렵이다.


'파이(π)’라는 인도소년이 있었다. π는 로고스적인 아버지와 신을 경배하며 자신을 응원하는 어머니, 이렇게 이성과 영성의 두 축으로 성장한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정부의 지원이 막히자 가족과 동물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주를 결정하였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2102 이 안 감독>의 스토리이다. 

캐나다로 가던 여객선은 폭풍을 만나 π가족과 수많은 사람을 안고 바다 밑으로 사라진다. 영화는 살아남은 π가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구명보트에 자신과 동물원의 호랑이(리처드 파커), 어미 오랑우탄, 하이에나,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이 타게 되었다고 하였다.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해쳤고 리차드 파커는 그 하이에나를 진압하며 모두 잡아먹었다고 하였다. 이 뱅골호랑이와 자신이 사투를 벌이며 같이 표류하여 400여일 만에 멕시코 해안가에 발을 딛게 되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있게 합리적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다른 내용을 말하였다. 구명보트에 탄 것은 자신과 어머니, 탐욕스런 요리사, 다리가 부러진 선원, 불교도였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발생하여 요리사를 시체를 먹으며 π 혼자 살아남았다고 하였다. 당신은 두 개 중 어떤 것을 믿고 싶은지 π와 영화는 묻는다.

합리적인 현실과 비합리적인 믿음의 두 이야기는 어쩌면 모두 진실일수도 있다.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리처드파커가 없었다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π는 토로했다. 그 망망대해에서 호랑이가 주는 공포가 오히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성을 발휘하며 처절하게 살아남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고통이 큰 의미로 작용한 것이다. 파이가 절규한 바다와 폭풍, 죽음과 호랑이는 지옥처럼 힘든 난관이면서 깨달음과 구원의 통과의례였다.


댓글과 말에 상처 받으며 세상 속으로 나아갈 용기를 잃은 분에게는 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극심한 공포가 그대의 배에 뛰어들어 삶을 뒤흔들어도 이 소년처럼 정신을 잃지 말자고. 이성적으로 하나씩 대처하다보면 그 단순무식한 맹수를 다루고 길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삶의 회의로 무기력한 노인이나 직장인이 신의 은혜는 받은 것이 없고 그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난 공감할 것이다. 사실 300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고의 참담함 앞에 신의 존재를 믿기 싫었으니까. 하지만 이성을 중심에 둔 채 믿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던 소년의 이야기는 해드리고 싶다. 


일상에서 비합리적인 성현을 체험하는 것은 평범한 경우는 아니지 않다고 하실 수도 있겠다. 당신 안에 있는 거룩한 힘이 바로 성스러움이라고 난 말할 것이다. 27년간 정신과 의사 일을 하면서 100% 이기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편협하고 잔인한 언행을 쏟아내는 사람일지라도 측은지심이 있더라. 오랫동안 참으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은 일생을 살고 있는 이들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삶의 희망이 바닥나고 죽음이 휴식이라 여기게 된다면 조금만 더 견디어보라고 간곡히 부탁드릴 것이다. 그대가 언젠가 베풀어준 그 거룩한 배려나 성의가 이제 그대에게 다시 살게 해줄 그 무엇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스무 살을 살아보지 않고 내일을 포기하려는 소년이나 새로운 배로 출항하는 청년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마 꼭 그렇겠지만 너의 배에 리처드파커가 느닷없이 올라타서 잡아먹히거나 바다로 떨어질 위기에 처할 것이다. 스스로 무너지거나 남이 너를 공격하듯이 자책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호랑이의 무서운 눈과 이빨을 참아내면 맹수의 에너지를 네 것으로 하여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혹시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 행운을 누린다면 ’지금 살아 있음‘의 광휘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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