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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닥터컬럼

제목

여러 죽음들을 통해 본 삶

작성자
마인드닥터
작성일
2010.01.0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215
내용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아주 안타까웠던 죽음들이 있었다. 2003년 여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던 울산 내황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세 명(이 진희, 김 다혜, 김 민화)이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이 외에도 태화강에서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본적도 없는 이를 구하려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은 강 준영님, 임 종도님, 주 민칠님이 있다. 모두 의사자로 인정되어 숭고한 죽음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게 되었다. 누구나 내면에 이러한 큰 사랑의 심성은 있겠으나 또한 누구나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위급한 사람들을 볼 때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냥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에 선선히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은 옛날부터 영웅의 역할이었다. 이들처럼 이타적인 사랑이야 말로 사람이 영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이다.

이런 분들 중에 재야교육자인 채 규철님이 떠오른다. 평생을 불꽃처럼, 소설 같은 삶을 사셨다. 장 기려 박사님과 함께 청십자 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거의 몸 전체가 타들어가는 심한 화상을 입는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타버린 얼굴과 몸에 30여 차례나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 더구나 그 와중에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던 아내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채 선생은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지만 깊은 긍정의 힘으로 죽음의 미몽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이후 더 열심히 일을 하여 ‘사랑의 장기기증본부’와 간질환자를 위한 ‘장미회’를 설립하고 86년에는 경기도 가평에 자비를 들여 대안학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웠다.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할아버지에게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은 ‘E.T.할아버지’였는데 ‘이미 타버린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그래도 항상 웃으며 사는 할아버지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 사는 데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해라).’ 사고 난 뒤 그 고통 잊지 않았으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 받는 거야.” 이 분은 2005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여 부인 곁으로 가셨다.

그런데 스스로 택하는 죽음들도 있다. 자살은 점점 증가하여 4번째로 흔한 사망원인이 되어버렸다. 포탈사이트에서 만나 동반자살 하는 젋은 이들, 경제적 절망으로 희망을 잃는 가장, 성적에 비관하여 뛰어내리는 학생 등 이 있다. 또한 인터넷에서의 악플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친구도 없는 외톨이 은둔자 등은 언제든 생을 포기할 수 있다. 예방방법으로 심리부검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오는데 심리적 부검은 자살 등 변사의 동기·원인을 추정하기 위해 자살자의 행적과 글, 주변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사망 전 일정기간의 심리상태와 그 변화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더불어 사는 모듬살이에서 내 이웃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면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삶의 역경들일 것이다. 지역사회와 기관들 및 국가적인 대처가 필요한데 심리부검 등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예방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족과 주위 분들의 관심과 대처가 중요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주위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다면 자살을 감행할 확률이 떨어진다. 건강한 가정과 인간관계가 자살 문제를 푸는 열쇠인 것이다.

올해에도 혹시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 ‘E.T 할아버지’처럼 이 상처들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나치독일에 의해 죽음의 수용소에 갇혔고 살인가스로부터 살아난 정신과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나 끝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하게 되면 삶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고 어떤 곤경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 경상일보 '경상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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