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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닥터컬럼

제목

길로 떠나는 사람들

작성자
마인드닥터
작성일
2009.04.1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323
내용
길로 떠나는 사람들
-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의 로베트 킨케이드를 생각하며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이라는 책에서 역사를 움직인 원동력은 정착하여 지키기에 급급했던 정착민이 아니라 민주주의, 시장, 예술, 문명을 주도했던 유목민이라고 역설한다.

인류역사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여 지도를 바꾸고 민족의 대이동을 일으켰던 스키타이,훈족, 알렌산더,징키즈칸의 몽골, 등은 유목민들이었다.
이들은 사방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였으며 열린 마음이었기에 세계를 정복하였다.
그리고 지키기 위하여 정착하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잃어버리고 그곳에 동화되었을 때 그들은 스러져 버렸다.

지금 우리들은 유목민이 아니라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인 정주민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러다가 짐을 꾸릴 때 얼마나 설레이는지!
노마드는 '유랑자'를 뜻하지만,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삶을 사는 현대인의 한 삶의 방식을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처럼 안주하는 이들은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로버트 킨케이드가 떠오른다.
이 사람은 로버트 제임스 밀러의 소설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이다. 이 픽션은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클린트 이스트우드(로버트 킨케이드)와 메릴 스트립(프란체스카)의 열연을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미국 중부 아이오와주 시골길에서 적당한 빛을 쫒아 수없는 길을 걸어 온 최후의 카우보이-조직에 동화하지 않는 머무르지 않는 자-인 프로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와 무심한 농사꾼인 남편과 건조한 시골생활에 둘러싸여 있지만 가슴에는 뜨거운 사랑과 춤추고 싶은- 자신도 몰랐던- 갈망을 가지고 있던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강렬한 사랑을 억제하면서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40대 주부 앞에 보통 남자와는 전혀 다른 깊고 신비한 눈빛을 가진 이 굉장한 매력의 나그네가 나타났을 때 두 사람은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본능의 춤을 추었던 불륜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소설과 영화였다.

남자는 말한다. 이 애매한 우주에서 여러 생애를 살아도 한 번 밖에 없을 확실하고 분명한 우리의 사랑이기 때문에 자신은 모든 것을 포기할수 있다고.
-맞다. 애매할 정도로 아주 광대하고 영구한 神과 宇宙에 비하면 너무 반딧불 같은 인간의 삶이다.
아주 아득한 시간에서부터 자신이 걸어온 모든 길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존재했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상투적인 작업 멘트 같지만 킨케이드가 말했기 때문에 절절하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아웃사이드로서 조직과 사회와의 동화보다는 우주와 자연과과 교감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늑한 가정의 노란등불 밑으로 지나가며 동경하였지만 결코 자신이 떠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 않았던 정착의 길에 미련이 없이 살아온 사람.
하지만 이 로드맨은 한 여자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그가 걸었던 인적 드문 해안의 작은 발자국들의 의미를, 한번도 항해를 떠나 본적이 없는 배에 실린 비밀스런 화물의 의미를, 황혼녘 도시의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는 그를 커튼 뒤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눈동자들의 의미를.
그는 먼 여행을 떠났다가 이제는 집에 돌아와 난로 앞에서 불꽃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녹이는 사냥꾼이었다.
집에 돌아와 정착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외로움을 그동안 무시하고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을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함을 이제야 알았고 또 그럴 사람이 정말 있음을 깨닫는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에 프로로즈를 할 때에 이렇게 말한다.
"나와 함께 여행해요. 우린 사막의 모래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몸바사의 발코니에서 브랜디를 마시는 거요. 아라비아의 범선이 돛을 달고 아침의 첫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광경을 보게 될거요. 나는 당신에게 사자의 나라와 벵골만에 있는 옛 프랑스 도시를 보여 줄거요. 그곳에는 멋진 레스토랑이 있소. 산길을 오르는 기차를 타고, 높은 피레네산맥에서 바스크족이 운영하는 작은 여인숙에도 들릅시다. 호랑이 원산지인 남인도에는 커다란 호수가운데에 섬이 있소. 그 섬에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있지. 당신이 길 따라 바람 따라 떠도는 여행을 싫어한다면 어딘가에 개업을 하겠소. 그 지방의 풍물사진을 찍거나 무슨 일이든 해서 우리가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소."

정말 멋있는 프로포즈가 아닌가!
하지만 프란체스카가 감탄했던 이 남자의 인생에 대한 감각은 인생이란 어차피 종착역을 향한 기약할 길 없는 행진이 아니었던가. 여자는 대답한다. “당신 안에는 길이 있어요. 환상과 현실이 만나면서 미처 이어지지 못한 틈, 바로 당신은 거기에 있어요. 그 길은 당신 자신이예요. 당신의 진화가지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당신은 그 골목을 치고 나가길 바래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당신을 구속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그렇게 하는 것은 당신이라는 멋진 야생동물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라며 고통스럽게 거절한다.

나는 이 소설의 러브스토리보다는 이러한 사람의 존재와 걸어온 길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깊은 끌림에 따라 정착하면서까지 같이 있고 싶어하는 남자의 구애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정체성과 내면의 울림을 알아 진화의 길을 계속 가도록 부탁하는 여자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같이 살았다면 어땠을까? 처음 서로 느꼈던 이 떨림은 점차로 없어질 것이다. 어쩌면 남자는 다시 빛을 찾는 자신의 길이 그리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다신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야했을 그 빛과 세상의 길에 대한 그리움은, 책임감을 떨치고 갈색 부츠를 신고 다신 길을 떠나게 할 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리움이 크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착하면 그렇게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흘간의 사랑이후 다시는 보지 못한 체 30년 가까이 죽을 때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며 서로의 마음속에서만 같이 매일을 살았던 이 두사람의 사랑은 텅 비어 있는 가득함이었다. 결국, 죽을때 가져갈 수 있는 영혼의 사랑만을 가지고 세상을 뜨는 두 사람.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옮긴이의 말처럼 우리가 메마른 세상에서 다시 삶의 춤, 사랑의 춤을 출 수 있도록 부추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 이러한 사랑의 춤보다는 로버트 킨케이드가 홀로 추어왔던 춤이, 길 위의 춤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내면의 울림에 따라 여행하였던 유목민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물론, 로버트는 이 차원에서 한 만남으로 추락하기를 바랬지만 말이다.

( 울산 의사회지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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